현장이 있다영화가 꽃 피우는 지역 문화, 지역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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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영화’에 대해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역에도 영화를 만들고, 만들어진 영화로 상영회를 기획하고, 영화를 관객들에게 해설하고, 리뷰를 쓰는 등 다양한 분야의 영화 활동가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지역 영화 생태계가 우리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영화 관련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역 영화 활동가들이 지역에서의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고정적으로 활동비를 지원받아야 한다. 그러나 지역 내에서 이들에게 활동비를 지급할 수 있는 영화 관련 시설이나 단체 수도 적을뿐더러, 이들마저 형편이 넉넉지 않은 게 현실이다. 지역 영화 활동가들이 실력을 향상하기 위한 교육 기관이 없다는 것도 지역에 있는 얼마 되지 않는 인력들이 수도권으로 이탈하는 원인 중 하나다. 


나는 지역 영화인들이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사회적협동조합 ‘인디하우스’에서 일하고 있다. 2017년 강릉에서 인디하우스가 설립될 수 있었던 건 영화 관련 비영리민간단체 ‘강릉씨네마떼끄’가 1996년부터 강릉에 독립영화가 싹틀 수 있는 토양을 다져온 덕분이다. 강릉씨네마떼끄가 운영하는 강원도 유일 독립예술극장 ‘신영’은 영화를 사랑하는 강릉 시민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모두의 극장’이며, 올해로 22회를 맞는 정동진독립영화제는 매년 참여 관객 수를 경신하며 강릉을 대표하는 영화축제로 자리매김했다. 강릉씨네마떼끄가 20여 년 간 강릉에서 독립영화의 접촉면을 넓혀감에 따라, 강릉씨네마떼끄를 거점으로 활동가, 창작자, 연구자, 후원자 등 다양한 구성원이 모여 지역 영화 네트워크가 구축됐다. 인디하우스는 이처럼 강릉씨네마떼끄가 만들어온 지역 영화 인프라를 초석으로 삼아 태동할 수 있었다.  


인디하우스에서는 매년 극 영화와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는 워크숍을 진행한다. 지역 영화의 인프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력을 양성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나는 2018년 인디하우스에서 극 영화 제작 워크숍을 수강했다. 내게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들이 서울에 집중돼 있어 지역에 사는 영화인으로서 아쉬움이 많았는데, 내가 사는 곳에서 영화 제작 워크숍이 열린다니 무척 반가웠다. 워크숍은 단편 영화 1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강릉에서 활동하는 김진유 감독과 김슬기 감독이 수업을 진행했는데, 이론 중심이 아니라 지역에서 영화를 찍으며 맞닥뜨리게 되는 한계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려줬다. 워크숍이 끝난 후에도 수강생들은 감독이 되어 직접 단편 영화를 만들거나 영화 현장의 스태프로 참여하면서 강릉의 영화인 네트워크를 확장해나갔다. 인디하우스의 영화 제작 워크숍은 지역 영화인과 예비 영화인을 연결함으로써 지역 영화인들에게 ‘지역에서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지난해 인디하우스가 개최한 ‘다큐멘터리 제작 워크숍’ 안내 포스터.


영화 제작 워크숍 외에 인디하우스가 주력하는 또 다른 활동은 영화를 매개로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커뮤니티 시네마’다. 인디하우스의 사무실이 있는 명주동은 2001년 강릉시청이 홍제동으로 이전하면서 공동화(空洞化)가 진행됐다. 그러자 동네 주민들이 주민자치 모임을 만들어 자발적으로 지역 재생에 나섰다. 인디하우스는 명주동 어르신들이 주축인 주민자치 모임 ‘작은정원’ 회원들을 대상으로 사진 수업을 진행하고 그 결과물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에 선정돼 작은정원과 함께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우리는 어르신들은 친근하게 ‘언니’라고 부르는데, 언니들은 ‘나이가 많아서 폐만 끼친다’며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끝까지 함께해주셨다. 언니들과 단편영화를 만드는 작업에는 강릉의 젊은 영화인들도 조력자로 나서줬다.   


언니들이 만든 영화는 신영극장에서 상영됐다. 영화가 상영되던 날은 꼭 동네 잔칫날 같았다. 대형 스크린에 언니들의 얼굴, 열심히 연기하는 모습을 가족들, 동네 친구들과 함께 보면서 언니들은 실컷 웃고, 손뼉 치고, 환호했다. 관객과 영화가, 그리고 관객과 관객이 호흡하는 그 광경을 잊지 못할 것이다. 올해 작은정원 언니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자기 이야기를 돌아보면서 언니들 각자가 개인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나’로부터 시작된 세계의 확장. 언니들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무척 궁금하다.


인디하우스는 명주동 주민자치 모임 ‘작은정원’과 함께 단편 영화를 만들며 ‘커뮤니티 시네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인디하우스는 단편 영화와 관객의 접점을 늘리기 위한 활동도 지속하고 있다. 관객과 만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단편영화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한 예로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섹션 출품작은 1040편으로 역대 최고다. 그러나 이 1000여 편 중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작품은 25편 내외다. 영화인들이 지속해서 영화를 만들 수 있으려면 작품과 관객이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게 독립영화 상영회 ‘씨네마실’이다. 씨네마실은 신영극장을 비롯해 다양한 지역 공간들에서 단편영화를 상영하고, 상영회에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 단체를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사람들이 동네 마실 가듯이 가까운 카페, 서점, 브루어리에서 지역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취지다. 또 영화를 매개로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과 공간이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 상영회를 넘어 지역 문화 네트워크 활동이기도 하다.   


영화를 ‘문화’가 아닌 ‘산업’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지역 영화 생태계가 발전하는 데 큰 걸림돌이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는 소자본으로 만들어진 지역 영화가 상영되기 어렵고, 관객과 만나지 못하는 지역 영화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영화 산업의 관점에서 영화 상영 온라인 플랫폼이 확장하는 상황도 우려스럽다. 영화가 자본이 유입되는 사업이 될수록 문화적 다양성은 위기를 맞는다. 다양성의 위기는 지역 영화계에서 특히 치명적이다. 인디하우스가 지역 영화인들과 영화 제작 워크숍을 열고, 지역 주민 모임과 커뮤니티 시네마를 진행하고, 지역 공간과 씨네마실을 운영하는 이유는 지역 공동체와 함께 문화 다양성을 지켜나가기 위해서다. 산업이 아닌 예술, 문화로서 영화가 사회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인디하우스는 앞으로도 지역의 다양한 구성원들과 영화를 매개로 한 소통과 교류를 이어갈 것이다.

강원문화재단 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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