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있다‘함께’라는 새 가능성, 온라인 강릉단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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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태어나면서 ‘함께’에서 ‘홀로’가 된다. 탄생은 필연적으로 이별과 짝이다. 사람이 태어나 가장 처음 배우는 감정은 어쩌면 고독일 것이다. 작은 아기에게 세상은 고독한 것이며, 그래서 끝없이 울게 되는 공간이다. 그렇지만 아기는 곧, 처음으로 울음을 그치게 되는 순간을 만난다. 다른 인간의 온기가 작은 아기의 몸에 닿으며, 아기는 ‘홀로’에서 다시 ‘함께’가 되는 법을 배운다. 아기는 이제 삶에서 무수히 많은 비정한 나날들을 보내게 되겠지만, 이 순간에 느낀 타인의 첫 온기를 죽을 때까지 기억하며 삶을 이어갈 것이다.


이 온기는 한 사람의 안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다. 그래서 생의 가장 강렬한 순간에는 언제나 타인이 존재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덮어주는 이불 속에서, 언니가 동생의 입에 넣어주는 사탕 한 알에서, 친구와 싸운 후 어설프게 다시 잡은 손바닥 사이에서, 첫사랑과 함께 밟은 모래알 위에서 우리는 그 온기를 발견할 수 있다. 이 따뜻함은 대체로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피어나지만, 집단 속에서 폭죽처럼 터지기도 한다. 그것을 유대감이라 한다.


이런 집단적 유대감은 현대 사회에서 이르러서는 예전보다 약해진 모습을 보인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국가 단위의 큰 행사가 아니면 좀처럼 느끼기 힘든 것이 되었다. 그러나 당신이 만약 6월에 강릉을 방문한다면, 사천진리의 바다와 소나무들보다 더 짙푸르고 생생한 유대감의 풍경에 빠지게 될 것이다. 도시 전체가 한 사람처럼, 한 사람은 다시 도시 전체처럼 움직이며 한 강릉인의 호흡이 강릉 전체를 움트게 하는 바람이 되고 강릉은 다시 한 강릉인의 심장을 뛰게 하는 혈기가 된다. 바로 ‘강릉단오제’다. 얼굴마다 들뜬 기운이 넘치고, 거리엔 풍등이 걸리며 아이들의 손에는 수리취떡이 들린다. 시장의 시끌벅적한 소리가 멀리까지 퍼지고 취기와 웃음기가 섞이며 노래가 넘실댄다.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축제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역의 축제를 설날과 추석보다 더 크게 생각하는 곳은 강릉 밖에선 좀처럼 찾기 힘들다. 강릉 사람들에게 단오제는 한 해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강릉단오제위원회 김문란 사무국장은 이에 대해 “폐쇄성이라고도 볼 수 있고, 네트워크의 힘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것이 천 년 동안 이어진 공동의 추억이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릉 사람들에게 강릉이라는 도시는 단순히 사는 공간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정체성이다. 강릉단오제가 지역의 대표 자산이 된 데에는 이런 바탕이 깔려 있다.


강릉 시민들의 단오제에 대한 열렬한 애정 덕분에, 단오제는 매해 열려 왔다. 지난 2015년 메르스(중동 호흡기증후군) 사태 때에는 공중보건을 위해 시민들이 참여하는 행사가 취소되긴 했으나, 제례와 단오굿, 관노가면극 등 강릉단오제 지정 문화재 행사만큼은 강릉 단오보존회에 의해 소규모로 진행됐다. 단오제는 강릉의 역사를 관통하는 ‘맥’인 셈이다. 그렇기에 2020년의 6월은 큰 역경이었다. 메르스보다 한층 더 강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요구하는 코로나19 앞에서, 강릉단오제는 전례를 찾기 힘든 결정을 내려야 했다. 바로 축제의 공간을 ‘온라인’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강릉단오제는 2020년, 온라인을 통해 수릿날의 흥을 부활시켰다. 그러나 그 준비 과정까지 마냥 신명 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만 해도 준비위원회 측에서는 낙관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나 대규모 감염이 터지면서 판이 완전히 뒤집혔다. 기존에 계획했던 오프라인 축제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온라인 축제 두 가지를 모두 준비하는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만 결국 온라인 개최가 결정됐고, 여러 사람의 애를 태우며 단오제가 시작됐다.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온라인으로라도 단오제를 개최해야겠다는 다짐만큼은 준비하는 이들 모두의 마음에 단단히 뿌리 내리고 있었다. ‘천 년 단오’는 멈추지 않는다는 믿음이 굳건하다는 걸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다온라인 강릉단오제 중계를 위해 마련된 스튜디오 현장.


우선, 터전은 유튜브와 TV(LG 헬로비전 채널 25번)가 됐다. 두 채널을 통해 6월 21일부터 28일까지, 매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두 시간씩 라이브 방송이 전해졌다. 시민들은 천 년 단오의 핵심인 단오굿 역시 라이브를 통해 관람할 수 있었다. 신통 대길 길놀이의 10년사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와 특집 영상 역시 ‘랜선 길놀이’라는 이름으로 시민들에게 선보여졌다. 국가 무형문화재 공연인 관노가면극, 강릉농악, 강릉학산오독떼기, 강릉사천하평답교놀이도 ‘방구석 1열’ 콘서트를 자처하며 화면을 통해 단오제의 정신을 전했다.


온라인으로 생중계된 '단오굿'의 한 장면.


사람들이 모이면 안 되는 상황이었지만, 축제란 본디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시작된다. 사람이 없으면 축제도 없고, 단오제도 없는 거였다. 공중보건을 해치지 않으면서, 단오제라는 거대한 교류를 이어야 했다. 일방적으로 송출하기만 하는 단오는 의미가 없었다. 결국 ‘함께’와 ‘거리두기’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해야 했다. 난관이었다.


단오제의 별미인 ‘신주미 봉정’은 랜선을 타고 전 세계로 확산됐다.


그러나 난관이 묘수를 냈고, 묘수는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신주미 봉정 릴레이’가 올해 강릉단오제가 낳은 대표적인 성공 프로그램 중 하나다. 신주미(신에게 바치는 술을 빚는 쌀)를 봉정하는 것은 단오의 시작을 알리는 행위다. 올해에는 SNS를 통해 신주미를 봉정할 다음 주자를 지목하는 이벤트가 열렸다. 강릉뿐만 아니라 제주, 미국, 캐나다, 호주에서도 릴레이가 이어지며 단오제가 세계로 크게 확대되는 예상치 못한 수익이 따라왔다. 나눔의 정신도 잃지 않았다. 신주미가 봉정되면 봉정한 사람에게 신주 1병, 노인 시설에 신주 1병이 기부됐다. 강릉의 선별진료소 5곳에도 500병의 신주가 전달됐다.

집에서도 단오를 즐길 수 있도록 탈, 부채, 엽서, 스티커, 소원등을 배달받을 수 있는 ‘단오체험 팩 나누기’ 역시 선착순 1500세트가 하루 만에 동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후 추가된 세트까지 모두 2400세트가 단오를 사랑하는 각 가정으로 배달됐다. 체험 팩 세트를 받은 사람들은 사진을 찍어 ‘인증’을 하면서 가정마다 작은 단오제를 즐겼다. 특히, 이 체험 팩의 수요 중 45%는 강릉 밖이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지역 축제의 전국 확장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집에서도 단오제를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된 ‘단오체험 팩’.


축제에는 춤과 노래가 빠질 수 없다. 지난해 강릉단오제에서는 대합창이 강릉을 하나로 묶었었다. 노래의 힘은 ‘영산홍 챌린지’를 통해 올해에도 이어졌다. 펑키 버전으로 편곡된 영산홍가에 강릉단오제위원회에서 짠 안무가 힘을 더했다. 남은 ‘신명’은 시민들의 몫이었다. 영산홍가에 맞춰 춤추는 모습이 유튜브를 타고 서로에게 전해졌다. 흥과 흥이 ‘랜선’을 타고 이어지면서 손을 맞잡은 듯 신명이 터졌다.


유튜브가 주요 소통 창구였던 만큼 이곳에서 활발하게 단오제를 누비고 흥을 즐긴 이들에게는 특별한 선물이 돌아갔다. 유튜브 라이브에서 댓글을 단 사람들은 단오 나눔의 정신이 담긴 수리취떡과 단오주를 배달받을 수 있었다.


그래도 아쉬운 사람들이 넘쳤다. ‘단오갈래 챌린지’는 이처럼 오프라인 단오제를 발로 누비고 싶은 마음을 풀어주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강릉단오제에 참석하는 자신의 모습을 합성하고 SNS에 인증하는 방식으로 랜선 나들이를 떠난다는 취지였다.


이들 프로그램이 호평을 받은 것은 하나하나가 모두 단오제의 정신과 내용을 잇고 있기 때문이었다. 작은 엽서 하나에도 단오제 전통의 풍경이 담겨 있었고, 노래와 이벤트마다 역사에 대한 고민이 묻어났다. ‘시민들의 자발적 교류’라는 단오제의 특성을 살리려는 쌍방향 소통을 향한 고군분투 역시 돋보였다. 이번 온라인 단오제는 유튜브와 TV로 단오제 영상을 틀어주기만 하는 한 방향 소통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마련했다. 축제는 즐기는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강릉 시내 곳곳에 단오제를 알렸던 단따라 팀.


온라인을 중심으로 단오제가 개최됐지만, 오프라인에서도 감염 예방 수칙을 지키는 선에서 축제가 지속됐다. 인형탈을 쓴 ‘단따라’ 팀이 안목커피해변, 중앙시장 월화거리, 오죽헌 한옥마을 등 강릉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강릉단오제를 알렸다. 가는 곳마다 시민들의 반가운 인사가 단따라 팀을 따라다녔다. 단오등을 밝히며 소원을 비는 ‘단오소원등 밝히기’ 행사도 시민들의 한 해 소망을 싣고 강릉시를 한층 따뜻하게 물들였다.


코로나 19로 전국 각지의 축제가 취소되는 가운데, 강릉단오제의 도전은 눈길을 끌었다. 행사가 진행될수록 호평이 이어졌기에 관심은 더욱 커졌다. 기대 이상의 성취에 다른 지역까지 희망이 배달됐다. 이번 온라인 강릉단오제의 주요 터전이었던 강릉단오제 공식 유튜브 채널의 구독자 수는 행사 동안 14배 증가했다. 강릉단오제 홈페이지 유입자 수 역시 약 4만 명에 달했으며, 페이지뷰는 10만 회에 이르렀다.


‘강릉맘 카페’와 MOU를 맺은 것이 덕을 봤다는 분석도 있다. 행사 기간 중 강릉맘 카페에서는 단오제에 관한 글이 100개 이상 올라왔고, 댓글은 2000개 이상 달렸다. 김 사무국장은 “댓글 내용을 보면 단오제의 의미를 새롭게 알게 됐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번에 온라인 단오제 각종 영상에서 단오에 대해 많이 알려 주니, 몸으로 체험하는 것과는 다른 교육적인 앎도 있었다고 하더라. 아이들에게도 지역 문화를 가르칠 수 있었다는 얘기도 많았다”고 전했다. 그는 올해 온라인으로 진행된 몇몇 프로그램은 내년에도 계속할 것이라고 계획을 알렸다.


총평은 ‘가치의 재발견’이었다. 강릉 시민들에게 단오제는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매해 돌아오는 당연한 행사였다. 너무 친숙한 존재에 대해서는 오히려 깊게 알지 못하기도 하는 법이다. 그러나 단오제가 위기를 겪으니 시민들의 관심이 새롭게 몰렸다. 세대가 달라져도 단오는 단오였다. 오히려 즐기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길이 제시됐다. 온라인으로 열리니 청소년과 청년, 즉 다음 세대들의 참여가 늘어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전통에 대한 가치가 약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전통을 어떻게 다음 세대로 전수할 것인가에 대한 작은 해답을 엿본 해였던 셈이다.


강릉에서는 ‘강릉 사람에게는 단오 DNA가 있다’는 말이 있다. 단오제를 즐기는 것이 부모에서 자식으로, 그 자식의 자식으로, 또 그 자식의 자식의 자식으로 이어지면서 축제가 하나의 유전자처럼 굳어질 정도로 그 맥이 단단하다는 의미다. 태어날 때부터 본 밤하늘 축제의 불빛이 내 자식에게로 전해지는 모습을 일생을 통해 지켜보며 강릉 사람들은 옛 시절의 그리움과 다음 세대로의 희망을 엮어낸다.


하나의 축제가 하나의 문화로, 하나의 역사로, 그것이 한 세대에게 전해지고 또 막 태어난 한 아이에게로 이어지고, 그 아이의 눈 속에서 다시 새로운 축제로 폭죽처럼 퍼지는 모습을 그려본다. 강릉단오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온기에 대한 믿음이다. 전국, 아니 전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강릉만의 ‘천 년 단오’가 내년에도, 다음 세대에도, 또 다음 천 년에도 그 터전을 무한히 확장하며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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