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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있다내일을 생각하는 삶과 사람들이 있는 곳, ‘내일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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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역에서 도보 15분 거리의 조용한 주택가에 수상한 상점이 하나 있다. 간판은 없지만 이름은 ‘내일상회’다. 내일상회엔 간판 말고도 없는 게 많다. ‘상회’란 이름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파는 물건이 많지 않다. 무엇보다 일회용품처럼 환경과 생태계에 해로운 물건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문 여는 시간도 그때그때 바뀌고, 문 닫는 날이 더 많다. 이 가게, 도대체 뭐 하는 곳일까?


내일상회를 쉽게 설명하자면 ‘더 나은 내일을 생각하는 가게’다. 지속 가능한 환경과 파괴된 생태계를 회복하기 위해 대안적 삶의 방식을 찾는 사람들에게 일상에서 환경 보호를 실천할 수 있는 물건들을 소개한다. 이를테면 썩는 데 수백 년이 걸리는 플라스틱 칫솔 대신 대나무 칫솔을, 수질 오염의 원인이 되는 세탁 세제 대신 천연 세제 역할을 하는 소프넛 열매를, 일회용기에 든 샴푸 대신 직접 만든 샴푸 바를 권하는 식이다. 사실 ‘상회’라고 이름 붙였으나 물건을 파는 것보다는 이런 물건들을 알리며 환경을 생각하는 생활 방식, 문화를 전파하는 게 내일상회의 목표다. 그런 까닭에 자원순환 생활용품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시민 참여형 워크숍도 자주 기획한다. 

내일상회는 현재 활동가 5명이 주축이 되어 운영되고 있다. 다들 본업과 내일상회 운영을 병행하고 있는데,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어 좀 더 안정된 조직 체계를 만들고자 한창 준비 중이다. 11월의 어느 월요일 저녁 7시, 일과를 마치고 내일상회에 모여 샴푸 바를 만드는 내일상회 활동가 네 사람을 만났다. 네 사람은 내일상회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사는 동네 이웃 사이기도 하다.


(왼쪽부터) 내일상회를 꾸려가는 지현탁·김현주·이혜림·이혜리 활동가


Q.  만나서 반갑다. 각자 간단히 자기소개를 해달라.

지현탁 활동가(이하 ‘산미’)   내일상회 운영 전반을 맡고 있다. ‘산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산미는 ‘산 미치광이’의 줄임말인데, 고슴도치와 비슷하게 생긴 ‘호저’란 동물의 다른 이름이다. 왠지 마음에 들어서 예전부터 산 미치광이를 활동명으로 쓰고 있는데 좀 괴팍해 보여서(웃음) 두 글자로 줄여 ‘산미’가 됐다. 강릉에서 대학을 다니게 되면서 이곳에 정착해 쭉 살고 있다. 현재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며 내일상회를 운영하고 있다.


이혜리 활동가(이하 ‘오늘’)   ‘오늘을 잘 살자’는 뜻에서 ‘오늘’이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고, 내일을 잘 준비하고 싶어서 내일상회에 합류했다. 강릉에 산 지는 6년 정도 됐다.


김현주 활동가(이하 ‘무무’)   어릴 적 잠깐 강릉에 살았고, 이후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가 20대 때 다시 돌아왔다. 여러 이름으로 활동해왔는데 결국 ‘무무’란 이름으로 수렴됐다. 아무 뜻도 없다는 뜻이다(웃음). 동물권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완전 채식인 ‘비건(vegan)’으로 살아가고 있고, 채식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제주도에 기반을 둔 ‘핫핑크돌핀스’란 해양환경단체의 강원지부 활동가도 역임하고 있다.


이혜림 활동가(이하 ‘솜씨’)    ‘솜씨’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늘려가자는 마음을 담았다. 2016년 강릉으로 이주했고, 현재 산림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Q.  어떤 계기로 내일상회를 만들게 됐나. 

솜씨   다들 청년 활동이나 지역 시민 활동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모임에 참여해 얼굴을 익히면서 알게 된 사이다. 우리 모두 기후위기 문제의 심각성을 크게 느끼고 있었고, 강릉이란 지역에서 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는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일상 속 실천의 첫걸음이 쓰레기를 줄이는 것, 즉 ‘제로웨이스트(zero-waste)’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봤다. 그렇게 해서 제로웨이스트 생활방식을 지향하는 모임을 시작한 게 내일상회의 출발점이다. 처음부터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데 필요한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가게를 운영할 생각은 아니었다. 


오늘   강릉에서는 제로웨이스트란 개념 자체도 아직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가 소개하는 물건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삶의 방식이 있고, 이런 물건들이 있다는 걸 우선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편집숍을 열었다. 


솜씨   사실 시작은 청년 모임에서 시작한 소셜 다이닝이었다. 밥을 굶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청년이 있었는데, 혼자 밥 먹을 돈을 아껴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던 거다. 이건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사회 환경의 문제, 소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 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소비주의,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삶의 형태를 모색하게 됐고, 점차 관심사를 넓혀갔다. 내일상회가 제로웨이스트 편집숍 형태를 띠고 있지만 기후위기부터 로컬 푸드의 중요성, 건강한 식생활 문화, 텃밭 가꾸기 등 지속 가능하고 생태적인 삶을 위한 폭넓은 주제들을 강릉 사람들에게 전달하려고 한다.

 

산미   지금은 내일상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지만 ‘생태전환마을내일’이란 이름으로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할 계획이다. ‘마을’이란 이름을 넣으니 주변에서 ‘마을을 세울 땅은 있냐’고 물어보기도 하는데(웃음) 물리적 개념의 마을이라기보다 네트워크 개념의 마을을 표방한다. 우리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비슷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자 한다. 물론 언젠가는 물리적 개념의 마을도 만들 수 있게 되면 좋겠다(웃음).


열심히 샴푸 바 반죽을 만드는 ‘무무’(오른쪽)와 ‘솜씨’.


Q.  이곳에서 주로 어떤 활동을 해왔나.

오늘   내일상회는 가게이면서 커뮤니티 공간이다. 생태 문제와 기후위기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연결하고 모일 수 있게 하는 책모임이나 강연을 열거나, 일상 속에서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다. 사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만 해도 웬만한 것들은 다 직접 만들어 쓰는 게 당연했는데 언제부턴가 그런 전통이 대가 끊기지 않았나. 우리는 그런 문화를 다시 이어보고 싶다. 그래서 ‘적당한학교’란 이름으로 자원순환 생활용품을 만드는 워크숍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만들고 있는 이 샴푸 바도 적당한학교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직접 만들어보면 거부감도 줄고, 일상에서 환경보호를 실천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조금씩 경험하면서 더 많은 사람이 삶의 방식을 바꿔나가길 바란다. 기후위기란 거대하고 절박한 문제가 사람들이 전과는 다른 생활 방식으로 전환하게 되는 결정적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본다.


솜씨   구정면 제비리에서 생태 텃밭도 함께 가꾸고 있다. 생태적으로 먹고살아 가려면 내가 먹는 것이 어디서 오는지, 어떻게 자라는지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공식적으로 말하면 올해 농사는 실패다(웃음). 수확물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다. 애초에 많이 수확하려고 시작한 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수확물보다 더 큰 걸 얻었다. 바로 ‘회복’의 경험이다. 앞서 말한 청년 결식 문제와 같은 시장 자본주의로 인한 폐해의 해결 방법 중 하나가 농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사람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 과정이 무척 즐겁다. 보람도 크다. 손이 간 만큼 결과가 나온다. 삽질한 만큼 밭이 만들어지고 가꾼 만큼 작물이 난다. 우리는 흙을 만지며 살아야 한다!(웃음)


오늘   누구나 ‘약간’은 농부가 되었으면 한다. 식량 주권 확보 같은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약간은 농부로 살면서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자연과의 거리를 좁히는 경험을 꼭 했으면 좋겠다. 


생태 텃밭을 함께 가꾸고 있는 내일상회 활동가들. ⓒ내일상회


Q.  내일상회의 목표가 궁금하다.

무무   앞서 ‘오늘’이 이곳을 가게이면서 커뮤니티 공간이라고 소개했는데, 덕분에 우리처럼 생활의 전환을 꿈꾸는 사람, 환경에 이로운 삶을 실천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런 사람들이 내일상회 공간을 거점으로 모이고, 우리가 하려는 시도들과 계속 연결되어나갔으면 좋겠다. 혼자서 하면 외롭고, 늘 정보를 찾아 헤매야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일상회가 함께 시도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봤자 강릉에 그런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겠어’, ‘몇 사람 모여서 뭔가 한다고 크게 달라지겠어’하고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실제로 이 공간을 거점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있고, 시도하고 있고, 서로 연결되고 있다는 거다. 우리와 비슷한 비전을 가진 더 많은 사람과 연결망을 확장해나가고 싶다.


산미   우선은 생태전환마을내일을 무사히 설립하는 것이다. 협동조합 설립이 우리 활동을 더 확장하고 더 많은 사람을 모으는 기틀이 되어주리라 생각한다. 협동조합을 만든 다음엔 자립할 수 있는 운영모델도 발굴해야 할 거다.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열심히 판을 짜고 있다(웃음).


솜씨   협동조합 준비 과정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행정과 소통하는 데 특히 어려움이 많다. 우리가 하려는 일이 정량적 성과로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행정기관의 사람들에게 우리 활동의 필요성과 목표를 설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우리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잘 전달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지금 만들고 있는 샴푸 바도, 사실 샴푸 바를 만들어서 집에 가져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왜’ 샴푸가 아니라 샴푸 바를 권하는지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그냥 ‘샴푸 바’라는 걸 만들어 봤다는 데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전하기 위해선 스토리텔링을 잘해야 할 것 같다. 


오늘   지금 내일상회에서 제안하는 물건들이 100% 정답이라는 건 아니다. 다만 이런 물건들을 계속 보여주고, 기존과 다른 생활 방식들을 제안하면서 기후위기란 의제를 일상 속에서 사람들이 꾸준히 고민할 수 있게 하고 싶다. 문제는 고민하는 사람이 아직 별로 없다는 거다(웃음). 고민하다 보면 각자 자기만의 답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본다.

강원문화재단 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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