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핀다사랑은 응답이다 – 책 ‹할머니의 여름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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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요! 못 들어갑니다!”

 

강릉 모루 도서관 정문, 두 명의 남자가 단호하게 막아섰다. 동시에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 아- 망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무기한 휴무에 돌입했던 도서관이 문을 연후, 처음 방문한 나는 당연한 절차에 안 당연하게 당황하고 있었다. 하루 전날 셀프 세차를 열심히 하며 차에 두었던 마스크들을 꺼내 몽땅 집에 둔 게 화근이었다. 정문 앞에는 ‹마스크 미착용 시 출입금지› 글자가 크게 붙어 있었다. 어쩐지, 뭔가 허전하더라.

 

“혹시 지하 매점엔 마스크 안 팔까요?”

 

나는 이미 약속 시각에 늦어 초조했다. 모루 도서관은 언덕 위에 있어 마스크를 사려면 차를 끌고 내려가 근처 어딘가를 다녀와야 했다. 그건 적어도 왕복 20분은 걸리는 일이었다.

 

“안 팝니다.”

“그럼 죄송하지만, 여기 마스크 여분은 없을까요?”

“없어요. 좀 비키세요. 뒤에 분 못 들어오시네요.”

 

쭈글쭈글 점점 주눅 드는 나. 괜스레 부지런 떨던 어제의 내가 죽도록 미웠고, 정신머리 없는 평소의 나도 미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미운 건 코로나19였다. 세균이 눈에 보일 만큼 커다란 형체가 있었으면 정말 꿀밤을 백 번 때려도 시원찮을 판이었다. 어쩌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서서 잠시 멘붕을 경험하다, 갑자기 굴러가는 잔머리. 

 

‘아! 미디어 센터에 전화해서 마스크 여분이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나는 모루 도서관 4층 강릉시 영상 미디어센터 회의에 가는 길이었다. 다행히 센터 직원이 여분의 마스크를 들고 친절히 입구로 와주셨다. 겸연쩍게 웃으며 민폐 덩어리가 된 나는 그제야 마스크를 받아 얼굴에 걸치고, 이마를 들이대며 열 체크를 하고, 수기로 인적 사항을 남기고, 자동 손 소독을 한 후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휴. 이동의 제한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엄청나게 괴로운 일. 여기저기 쉴 새 없이 들락날락하던 평소 내 일상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었는지 깨닫는다. 일상의 균형을 잃고 나서야 무심코 지나쳐온 것들에 가치를 깨닫는다. 언제나 소를 잃어야 외양간을 고치는 이 심보는 무엇일까. 다행히 회의에 늦지 않았지만, 미팅 내내 마스크 안의 텁텁한 공기가 얼굴에 달라붙어 괴로웠다. 이러다 내 숨에 내가 죽을 지경이었다. 뭐, 어디 공기뿐이겠는가, 무얼 해도 흥이 나지 않는 이 기분은 어떻고. 

 

회의가 끝나고 ‘포남포남’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강릉 포남동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작은 공유 서재를 운영하고 있다. 기분처럼 무거운 회색 철문을 열고 들어가 어지러운 마음을 다독일 책을 살폈다. 좋아하는 ‹안녕달› 작가님의 그림책 ‹할머니의 여름휴가›가 테이블 위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책 속엔 높은 지대에 강아지와 혼자 사는 할머니가 나온다. 할머니의 이동은 어려워 보인다. 집 앞 끝없는 계단은 코로나19와 비슷하다. 더운 여름, 안부 차 할머니 집을 방문한 가족들. 함께 시원한 바다로 여행 가자고 제안하는 손주에게, 아이 엄마는 “할머니는 힘들어서 못 가신다니까”하고 단호하게 말한다. 하지만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가 아니던가. 어른이 되면, 우린 그 사실을 종종 잊는다. 몸이 갈 수 없다고 마음이 갈 수 없는 건 아닌 것을. 

 

손주는 작은 방안에서도 어디로든 상상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할머니를 위해 바닷소리가 들리는 작은 소라 껍데기를 선물한다. 가족들이 돌아간 후, 할머니와 강아지는 곧장 소라 속으로 자신들만의 여름휴가를 떠난다. 넘실대는 푸른 바다와 조개 모양 선풍기 스위치도 살 수 있는 곳. 푸른 여름 바다는 너무 생생하다. 

 

아마 할머니는 가능한 한 아주 먼 바다로 다녀왔겠지. 그건 그녀가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상상할 힘이 있다는 말이겠지. 멀리 휴가를 떠난 할머니의 행복한 모습에 마음이 따스해진다.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낭만적인 일인지, 얼마나 다행스러운 삶인지 책을 읽는 내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책을 덮고도 눈을 감으면, 한참 동안 쏴-아- 파도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의 여름 휴가› 속의 한 장면 (창비 제공) 


인간에겐 상상력이라는 근사한 재능이 있다. 자신만의 이야기로 표현하면 예술이라고도 부른다. 예술적 상상력은 아주 사소한 어떤 것, 가령 예를 들면 손자의 소라 선물과 같은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 우리가 가능한 것만 꿈꿀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는 꿈꿀 수 있는 만큼 힘껏 꿈꿀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엔 많은 것을 멈춰야 했다. 사막에서 만난 폭풍처럼 세계를 휩쓸고 있는 거대한 바람이 지나가길 웅크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긴 불안은 인간 안에 숨어있던 폭력성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곳곳에서 화가 난 사람들을 보았다. 

 

불안한 사람 중 한 명은 나 자신이었다. 세상과 사람과 업무와 계속 단절된 기분으로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기대하는 건 뭘까, 왜 일은 꼬이기만 할까. 겹겹이 쌓인 지독한 기분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었다. 결국, 펜을 들었고 예술적 상상력을 발휘해 일명 ‹포나미 편지›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포나미 편지› 프로젝트는 한 사람의 고민이 담긴 편지를 백 명에게 보내 각자의 방법을 들려주는 일이었다. 어떤 기분은 글로 표현했을 때 더 또렷해지기도 하니까. 나는 끙끙거리며 고민의 편지를 썼고, 편지를 받아줄 사람들을 찾았다. 직접 만나서 전달하기도 했고, 우편으로 보내기도 했다. 처음엔 10명이라도 신청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신청해주었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오는 답장들. 철제 우편함에서 첫 답장을 발견했을 때 설렘이 지금도 생생하다. 편지 봉투를 열자마자 작은 스티커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는데, 즉석복권이었다. 나는 복권을 들고 한참을 웃었다. 아, 이렇게 답장을 보낼 수도 있구나. 돌아온 답장은 하나 같이 감동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눈가가 자꾸 뜨거워지고 굳어있던 내 왼쪽 가슴께에 온기가 돌았다. 막혀있던 무언가 천천히 풀리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나눈 편지의 문장들은 단순했지만, 진심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어떤 이야기들은 읽은 후에도 마치 그 사람의 목소리가 귓가에 걸린 것처럼 오랫동안 맴돌곤 했다. 이 편지들은 서로의 안부였고, 사람에 대한 기다림이었으며, 마음의 증거였다. 

 

편지를 보내는 사람은 답장을 기다린다. 사랑은 응답이다. 상대에게 사랑해-하고 말하면, 메아리처럼 돌아오길 기다린다. 사랑은 조개껍데기고, 편지다. 마음이 연결되기 위해선 약간의 상상력과 예술적 호기심이 필요할 뿐이다. 나는 답장 온 편지들을 많이 아끼면서 위로가 필요한 밤 천천히 읽고 있다. 많은 것들이 순간적이고 순식간에 지나가겠지만, 내게 온 편지와 마음들은 긴 시간 진득하게 남으리라 확신한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정지 버튼을 누른 세상에서 내가 찾고 있던 건 특별한 게 아니라는 걸. 지독하게 지루했던 일상의 안온함. 마스크 아래 가려진 사랑하는 이의 얼굴, 마주 보는 눈빛, 다정한 목소리, 곁에서 내쉬는 숨, 카페의 백색 소음, 잔디밭의 아이들, 다 같이 부르는 노랫소리…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던 삶의 질감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 어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본다. 우리가 가진 예술적 상상력으로 만들어내고, 다짐하고, 희망의 게이지를 채운다. 숨어있는 사랑을 기어코 찾아내고야 만다. 그러니까 별일 아닌 일로 별일을 만드는 힘이 있다. 사랑의 마음이 깃든 것. ‘나 여기 있어요’ 하며 손들고 있어도, 때론 그 모양이 너무 흔하고 하찮아서 알아보기 힘들지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어딘가, 제각기 자기의 모습으로, 분명 존재하고 있다. 나는 그것들이 우리를 이어주고 있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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