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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핀다사람은 케이블카를 타도 되는가 – 이강길, ‹설악, 산양의 땅 사람들(Gorals don’t ride cable cars)›(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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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 산양의 땅 사람들

‘설악, 산양의 땅 사람들’이라는 제목은 설악, 산양, 사람, 삼자의 삼각관계를 시사한다. 설악은 개발 이익을 좇는 인간의 욕망으로 파괴되는 자연을 대변하고, 산양은 설악에서 살아가는 다른 야생동물들을 대변한다면, 설악산 오색 삭도(케이블카) 사업에 찬성하는 사람들과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야생의 자연을 대하는 사람의 대립하는 두 얼굴을 대변한다. 설악, 산양, 사람의 삼각관계는 삼각뿔의 꼭짓점에서 그 갈등의 정점을 찍는다. 고(故) 이강길 감독(1967-2020)은 약 4년간 설악, 산양, 사람이 그린 삼각형의 땅에 머물렀다. 설악은 설악의, 산양은 산양의 자리를 지킨 반면 사람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사람의 움직임으로 인해 삼각형 땅은 불안정하게 움직이고 갈등은 그 밀도가 높아졌다 낮아지기를 반복할 뿐 잦아들지 않고 있다. 카메라는 세모진 땅을 부유하는 불안정한 대기를 포착한다. 제자리를 지킨 산과 산양 주변을 맴도는 사람 곁에 선 카메라에 잡힌 갈등의 면면은 짧지 않은 여정이 남긴 무수한 발자국을 대변한다. 이렇게 포착된 장면은 사각형의 화면 안에서 불안정한 한편 그 밖에서 화면을 바라보는 시선을 붙잡는다. 

설악산 오색 삭도 사업을 둘러싼 공방은 2001년께 시작됐다. 지난 20년간 사업을 추진하려는 행정 당국의 입안 시도는 번번이 심의 부처인 환경부의 사업 불허 처분에 부딪혔고, 지난해 9월 환경부(원주지방환경청)의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입장 발표로 현재 중단된 상태다. 이에 행정 심판을 청구한 강원도와 양양군은 이번 소송에 이겨 사업 착수 성공의 종지부를 찍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듯하다. 사업 추진에 적극적인 지자체 정부는 지난 10월 초, 원주지방환경청의 환경영향평가 ‘동의’를 끌어내기 위한 증거를 마련하기 위해 사업 예정 부지에서 현장 조사를 벌일 계획을 발표했고,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11월 초 이틀간 현장 조사에 나섰다. 행심위의 최종 판결은 현장 조사 후 심리 절차 등을 거쳐 내년 1월쯤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오색 삭도 사업의 타당성을 파악하기 위해 증거 조사에 착수한 지난 11월 4일, 상복을 입은 양양군민들이 조사 현장에 모여 사업 추진을 촉구하고 있다. ⓒKBS뉴스 화면 영상 캡처


이강길 감독은 2015년부터 ‘설악’에 머물렀다. 그를 붙든 ‘설악’은 사람의 입산을 반기지도 피하지도 않는 자연물 그 자체라기보다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기호에 가깝다. 오색 삭도 사업 대상인 ‘설악’은 사업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평행선을 그으며 갈등하는 현장으로, ‘설악’의 지시체, 즉 ‘설악’이라는 이름이 붙은 산 그 자체를 겉도는 기의다. 사업 예정 부지인 오색약수터-끝청 구간은 묵묵히 산의 한 능선을 이루고, 이 능선을 따라 살아가는 산양 또한 묵묵하다. 자연은 묵묵하지만 자연을 마주한 인간은 시끄럽다. 사업에 찬성하는 쪽과 이에 반대하는 쪽의 대립은 소란스럽다. 관광 산업을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라는 구호, 야생동물의 서식지 보호와 생태계 파괴 저지라는 구호의 충돌음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사업이 추진될 경우 산에서 울려 퍼질 폭력의 소음이 환청처럼 들려온다. 산과 산양을 보호하기 위해 산양의 삶을 입증하는 흔적을 찾아 나선 사람들의 절박함은 산과 ‘설악’ 사이를 맴도는 바람 소리와 같다.


케이블카를 운행하려면 철탑 형태의 지주가 필요하다. 지주가 들어서기로 예정된 자리가 깃발과 끈 등으로 표시돼 있다. ⓒ‘2019서울독립영화제’ 미리보기 영상 캡처



산양은 케이블카를 타지 않는다 

영화의 피사체는 산양도 ‘산양의 땅’인 설악도 아니다. 영화의 피사체는 사람이다. 영화 속 사람들은 ‘설악’과 ‘산양’과 ‘케이블카’를 이야기하고 설악과 산양과 케이블카는 전면에 등장한 사람 뒤편에서 배경이 된다. 화면 속 사람이 말하는 ‘설악’과 ‘산양’과 ‘케이블카’는 화면 밖 사람에게 설악과 산양과 케이블카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설악, 산양, 케이블카라는 열쇳말로 모인 사람들은 케이블카를 설치함으로써 양양군민이 벌어들일 경제적 이익을 설파하는 한편 삭도 사업이 설악산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고 그 피해는 야생동물은 물론 사람에게도 돌아온다는 것을 호소한다. 관객 각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설악, 산양, 케이블카의 이미지는 카메라가 포착한 갈등의 민낯에 겹쳐진다. 


설악산오색케이블카비상대책위원회 등 오색 삭도 사업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2017년 2월 6일 대전시 서구 문화재청 앞에서 문화재위원회의 사업 불허 결정을 규탄하는 상여 놀이를 벌이고 있다. ⓒ‘2019서울독립영화제’ 미리보기 영상 캡처


2018년 1월 10일 시민소송인단 등은 문화재청이 사업 불허 결정을 번복해 현상변경허가로 입장을 바꾸자 이를 취소할 것을 요구하며 ‘설악산 천연보호구역 문화재현상변경허가 취소소송’ 소장을 서울행정법원에 제출했다. 소장을 내기 전 법원 앞에서 박그림 녹색연합 공동대표(가운데 마이크를 든 사람)가 소송의 주요 내용 및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2019서울독립영화제’ 미리보기 영상 캡처


영화는 고발에 충실하다. 극영화와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의 특장(特長)이자 특징이 현실에서 일어난 문제적 사건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공론화하기, 즉 대중에게 문제의식을 일으키고 이를 대중적으로 전파하는 의도를 갖는 르포르타주로서의 역량에 있다면, 이 영화는 바로 이러한 다큐멘터리의 특징이자 특장에 충실하다. 어쩌면 사건의 문제적임 그 자체가 극적이어서 다른 극적 장치가 필요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사업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의 대립은 공고하다. 소통의 여지는 곧 타협의 여지가 되어버리는 것일까. 지난 20년은 갈등이 위기와 절정을 오갈 뿐이며 해소되는 결말에 이를 가능성은 재차 미래로 유보되는 시간이었다. 영화의 상영 시간 105분은 그 20년을 압축한다. 영화의 서사는 위기와 절정에 머문다. 타협할 수 없어 소통의 여지마저 부재하게 된 양쪽의 대립을 바라보는 관객은 그 지난(至難)한 긴장을 공감한다. 처음 사업이 거론되었을 때 곧 이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나타났고, 대립하는 양쪽 사이의 긴장은 줄곧 팽팽했고, 이쪽에서 당기는 힘이 더 세졌다가 저쪽에서 당기는 힘이 더 세지기를 거듭할 뿐 긴장은 늦춰지지 않았다. 


설악산 오색 삭도 사업 예정지에서 살아가는 산양의 모습. ⓒ‘2020서울환경영화제’ 공식 웹사이트


산양은 케이블카를 타지 않는다. 케이블카가 설치된다면 그 이용자는 어디까지나 사람이다. 삭도(索道)는 삭도(削道)이기도 하다. 산 밖, 산 밑에 살며 산 위에서 보이는 그 아래와 너머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슬리퍼나 하이힐 차림으로도 얼마든지 산 정상에 오를 수 있도록 산의 일부를 잘라내고, 그 자리에 자연스럽지 않을뿐더러 자연을 해치는 외래종을 이식하는 것이다. 산속에 살며 자신의 서식지를 벗어나지 않는 산양은 삭도에 집과 고향을 빼앗긴 난민이 된다. 산양은 인간의 불필요한 욕구와 지나친 욕심 탓에 생존이 위협당하는 처지에 몰린다. 다행히 산양의 주거권, 이동권,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 있고, 영화는 이들의 진정성을 담는 데 주력한다. 사업에 반대하는 쪽을 대표하는 박그림 녹색연합 공동대표를 필두로 오랫동안 설악산 생태계를 지키는 데 힘을 쏟은 사람들은 삭도 노선으로 예정된 능선을 따라, 도심의 뜨거운 아스팔트 길 위에서 오체투지를 하며 인간의 폭력에 취약한 산과 산양을 대변한다. 이들의 고단한 행진은 비폭력 저항의 온도를 가리킨다. 부단히 땔감을 넣어 죽지 않고 살아있는 희망의 불씨는 원주지방환경청 앞에서, 강원도청 앞에서 행정 당국의 냉대와 한겨울 칼바람을 이겨내는 힘이다. 


사람은 케이블카를 타도 되는가

이강길 감독은 무분별한 개발로 파괴된 환경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데 천착했다. 가해자인 개발 주체, 피해자인 개발 대상의 명확한 구도를 전제한 그의 영화들은 피해자의 편에 서서 이미 일어난 피해 현실을 보듬고 앞으로 일어날지 모르는 피해를 막기 위해 고발하는 의도에 충실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땅에서, 내 집 주변에서 어떤 폭력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호소하는 감독의 고군분투는 분명한 ‘선(善)’을 표명하고 독려한다. 이강길 감독이 올곧게 지향하는 선은 삭도 사업 예정 부지인 설악산 오색약수터-끝청 구간, 새만금 간척 사업 대상지인 동시에 핵폐기물 처리장 부지로 선정된 부안 갯벌 등 돌이킬 수 없는 파괴가 예고된 자연환경에서 파괴를 막고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선을 대변한다. 이 선은 근거 없는 개발 논리를 밀어붙이는 기성 정치에 맞서 의심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에 호소하는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과 맞물린다.

사람은 케이블카를 탄다. 그러나 타선 안 된다. 영화는 산양이 타지 않는 케이블카를 사람도 타선 안 된다고 말한다. 산양의 생존을 위협하고 산양을 포함하는 설악산 생태계를 파괴할 것이 분명한 오색 삭도 사업은 절대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의지를 표명한다. 지자체 정부와 양양군번영회 등 사업 추진을 밀어붙이는 쪽은 언성을 높여 사업의 수익 기대효과를 홍보하는 데 열심이라면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과 설악산을지키는변호사들 등 사업 추진을 막아내는 쪽은 묵묵히 사업 추진 세력에 맞서 산양과 설악산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사람이 산에 오르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도 되는가. 사람은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오르지 않아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산에 오르려고 케이블카를 타면 산양도 산도 살아남을 수 없다. 설악은 사람의 땅이 아니다. 영화는 이 명약관화한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 사람의 자리를 쫓는다.




1) 1) a. ‘사람’ 대신 ‘인간’을 쓴 까닭은 ‘사람’에는 담겨 있지 않지만 ‘인간’에는 담겨 있는 뜻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인간이라는 표현은 “마음에 달갑지 않거나 마땅치 않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의도를 내비친다. 네이버 지식백과, 『다른 말과 틀린 말』(강희숙, 도서출판 역락, 2016)에서 「‘사람’과 ‘인간’」 항목의 내용 참고, 이 글에서는 작품의 제목에 ‘사람’이 들어 있음을 감안해 ‘인간’을 쓰기보다 ‘사람’을 쓴다. 그러나 이하 이 글에서 언급되는 ‘사람’은 ‘사람’이 들어 있는 각 문장의 맥락에 따라 이러한 ‘인간’의 뜻을 반영하기도 한다. 

b. 인간은 자연의 일부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자연과의 분리를 상정하고 자연과 다른, 심지어 자연과 대립하는 문명과 사회를 일궜다. 인간의 무한한 역량을 믿는 인간은 인간의 유한성을 일깨우는 자연과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 ‘자유의지’와 ‘합리적 이성’으로 일컬어지는 인간의 무한한 역량에 대한 인간의 확신은 인간 중심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역사를 이끌었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알지 못하고 자연을 마주하는-자연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연과 마주 보는- 인간은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 사로잡혀 자연을 대상화·타자화한다. 


2) 이 작품의 영문 제목인 ‘Gorals don’t ride cable cars‘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산양은 케이블카를 타지 않는다‘이다. 녹색연합에서 2015년 5월 발간한 소식지 『녹색희망』247호의 표제 또한 <산양은 케이블카를 타지 않는다>이다. 이 발간 호는 설악산 오색 삭도 사업에 반대하는 호소를 담은 글들을 싣는 동시에 산림개발을 막고 국립공원을 보존해야 할 필요를 역설하는 취지 또한 담았다. 이 발간 호를 포함한 『녹색희망』237~272호(2020년 9월 발간한 272호가 종이 인쇄본으로 펴낸 마지막 『녹색희망』이다)는 녹색연합 웹사이트에서 PDF 형식으로 열람할 수 있다. 


3) 이강길 감독의 <어부로 살고 싶다-새만금 간척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2001), <어부로 살고 싶다-새만금 핵폐기장을 낳다>(2004), <살기 위하여>(2006), <야만의 무기>(2010)는 모두 새만금 간척사업 대상지인 동시에 핵폐기물 처리장 부지로도 선정된 전라북도 부안의 갯벌과 바다 생태계에 머문다. 바다와 갯벌 생태계에는 물고기, 김, 조개와 같은 비인간 생명체만이 아니라 어부로서 갯벌과 바다에 뿌리내린 사람들도 속해 있다. 이 4편의 영화는 모두 부안의 바다와 갯벌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한 사람들의 고군분투를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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